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는 알려진대로 폴 고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고갱의 작품은 쉽게 접하면서도 그의 삶에 대해선 그리 알려진게 없는데, 이 소설을 읽어보면 고갱이란 작가의 면모를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다. 


프랑스 출신의 고갱은 소설속에서 런던 출신의 증권 중개인 스트릭랜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면서, 소설은 추리소설같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도대체 왜 그가 안빈낙도를 버리고 파리로 떠났는지 주변 사람들은 온갖 억측으로 추리해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맞히지 못한다. 단순하게도 그는 정말 그림을 위해 파리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47세의 나이로 말이다.  


빈 손으로 떠난 스트릭랜드는 파리에서 생활고를 겪는다.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작가로서의 꿈을 차근히 준비한 그는 작품활동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주변을 고려하지 않는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이 기피하는 인물로 낙인찍히고 만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몇 사람만큼은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헌신적인 도움을 준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더크 스트로브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단 화가인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했다. 그에게 스트릭랜드의 예술작품은 분명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트로브의 예술적 빈곤함을 알아 챈 스트릭랜드는 그를 철저히 홀대했고, 그럼에도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를 숭상했다. 그런 나머지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아내인 블란치마저 빼앗기고 블란치도 스트릭랜드의 버림을 받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이쯤에서 책이 시작할 무렵 글을 다시 되새겨 보자. 책에는 지위가 아닌 인간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가 바로 스트릭랜드라고 규정했다. 아마도 서머셋 몸은 스트릭랜드의 예술을 향한 불같은 집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열정을 형상화한 것이 달(Moon)이었을 테고, 그에 반해 세속적인 가치가 6펜스짜리 은화였을 것이다. 결국 타히티 섬에까지 가서 자신의 예술적 노력을 바쳐 불멸의 작품을 남긴 스트릭랜드의 불꽃같은 예술정신은 인류 역사에 길이 길이 남았다. 


하지만 그의 집념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의 발현에 불과하다. 그 끝이 비록 가치있는 결론을 낳았다 할지라도, 그는 가족을 버리고, 친구를 배신했으며, 철저히 주변 사람을 이용했다. 의도했건 아니건 결과적으론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셈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는 정말 순수한 예술정신을 지녔고, 또 그만큼 자신을 학대했을 뿐이다. 나쁜 남자와 비견된다. 그에 비하면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는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나쁜 남자였다. 그는 적어도 남을 위해 눈물 흘렸던 마음을 지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나쁜 남자둘에게는 여자를 끄는 마력이 있는 듯 하다. 파리에서도 타히티 섬에서도 스트릭랜드는 여자들의 관심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난 주변에서 스트릭랜드와 유사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그런 주변 파괴적인 인격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불처럼 화려하지만 모든 걸 집어 삼키는 사람 보다 흘러가는 물처럼 주변과 융화하는 사람이 더 좋지 않을까? 조르바도 부담스럽지만 스트릭랜드는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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