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주말마다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KBS의 '누들로드(Noodle road)'라는 다큐멘터리인데요. 참신한 기획하며, 방대한 스케일하며, 세련된 화면하며, 다큐멘터리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수준높은 다큐멘터리를 국내에서 제작했다고 하니 솔직히 믿어지지 않더군요. 벌써 여러나라로 수출되었다고 던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지난 주말도 옷방에 가족이 모여 시청했습니다. 그간 TV를 거실에서 퇴출한 이후 TV 시청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요. 누들로드 삼매경에 빠져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 엄마, 아빠가 아기곰에겐 무척 생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먼 아기곰만 스트레스가 쌓였을꺼구요. (아이고.. 미안~) 

'누들로드'는 국수라는 음식이 아시아에서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광범위하게 보급이 된 이유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세계시장을 겨냥해서인지 '켄 홈(Ken Hom)'이라는 중국계 미국인을 사회자로 내세웠구요. 시종 영어로 진행합니다. 물론 나레이션은 따로 한국말로 더빙하긴 했지만, 그래서 언뜻 보면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착각하게 하네요.


어찌보면 이 다큐멘터리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음식을 매개로 한 문명사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유럽의 건식문화를 대표하는 밀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습식문화가 결합된 음식인 국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퍼져나갔고, 현재는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흥미로운건 2,500년 전의 미라에서도 발견된 국수가 각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수의 재료가 밀에서 쌀로 바뀌고, 손으로 먹는 이슬람권에서는 국수의 길이가 손톱 크기로 줄어들고, 포크를 이용하는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둘둘 말아 먹을 수 있게 포크의 폭이 촘촘해졌죠. 그래서 현재의 모습으로 다른 듯 발전되었지만, 이면에는 공통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간 역사를 보는 관점이 특정 지역의 특정 시기, 즉 15세기의 조선시대처럼 미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왔으니까요. 하지만 전 세계를 한눈에 올려놓고 분석하니 또 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예를 들면 12세기를 기준으로 보면, 파리에는 10만의 인구가 있었던데 반해, 송나라에는 수도에 50만명의 인구가 있어 도시를 형성했으며, 동시에 아랍 상인과 활발한 교역을 하고 있었다는걸 고서화를 통해 알아내는거죠. 지리적으로 떨어진 문명권 간의 왕래는 필연적으로 중간지역의 문화교차지가 나오고, 결국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서로 비슷하게 발전하는 양상을 눈으로 확인하니 세계는 정말 좁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제는 주로 이탈리아 파스타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통설에는 마르코 폴로가 들여왔다는 것이었는데, 실은 이슬람 세력이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섬을 200년간 지배했을 때 전수되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300가지가 넘는 파스타 요리들을 보여줬는데, 어찌나 군침을 돌게 하던지요. 늦은 시각 좋아라하는 파스타가 나오니 참... 힘들더라구요. 조만간 파스타 먹으러 스파게티아에 함 가야겠습니다. 

다음주는 동아시아에 관한 이야기라네요. 역시 재미있을꺼 같구요. 잘 기억했다가 놓치지 말아야 겠습니다. 벌써부터 시청시간이 기다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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