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좀 한다는 사람들이 한 번씩 언급하는 책이 있다.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다. 원래 시류에 편승하는 듯한 책엔 큰 흥미를 느끼지 않지만, 조르바를 그런 책으로 분류할 순 없다. 오히려 조르바는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주문했고 다 읽어냈다.


소설은 예상과 달리 큰 재미는 없었다. 살아온 배경이나 성향 등 공통점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인생의 묵직한 주제까지 옥신각신 주고 받는 얘기가 울림이 있진 않았다. 또한 주인공 조르바가 실존인물이라는 팩트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풀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조르바라는 인물이 가진 성향에 큰 매력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그걸 풀기 위해선 조르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조르바는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누군가 도덕관념이나 윤리의식을 들먹이면 "그딴거 개나 줘버려~" 라고 소리질러댔을 것이다. 그렇다고 천성이 나쁜 사람도 아니다. 다소 보는 입장에 따라 거칠다고 할지언정 말이다. 오히려 꽤나 인간적인 성품을 지녔다. 매사에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그래서 뒤끝이 없다. 이 정도의 성격의 소유자라면 동네 어딘가에서 한 두명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르바의 진정한 매력은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는 철학은 아니지만, 투박한 행동으로 보여지는 삶에 대한 자세가 매우 진중하다. 무학의 깨달음이라는 건 조르바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평소 끔찍하리만치 여성비하적인 언어와 막돼먹은 행동을 퍼붓지만, 정말 여성을 보호해야 할 때 용기있게 나서는 조르바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이 이 소설 속 화자인 카잔차키스의 캐릭터와 대비되어 더욱 극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조르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마 두 가지 부류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조르바와 정반대 지점에 서있는, 이를테면 카잔차키스와 비슷한 그룹. 이들은 모범적으로 성장하고, 많이 배워,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가벼운 인생에 대한 갈증 또한 갖고 있다. 많이 움켜쥔 사람일수록 손을 가볍게 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아마 조르바를 보면서 원초적인 질투심이나 동경심을 많이 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조르바와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부류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조르바가 대변해준다고 믿는다. 아마도 주위 시선에 조르바를 언급하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느 정도 미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조르바와 같진 않다.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조르바가 많았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조르바 삶의 지향점은 종교와 이념에서 탈피한 인간의 영역과 일치한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붓다 등을 연구하는 카잔차키스가 놓쳤던 부분, 즉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조르바에게는 본능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다. 육체를 영혼의 부산물로 생각하는 공허함 역시 조르바는 단호히 거부한다. 어떤 거창한 이론적 배경으로 논쟁하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알게 된 무학의 깨달음으로 가볍게 무력화시킨다. 그런 그에게 이념 역시 그러하다. 혹자는 아무 때나 무례한 언어를 남발하는 조르바를 불편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르바의 솔직함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아니 인간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관대해지자. 꼰대처럼 굴지 말고.  


덧글.

영화 '희랍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안소니 퀸이 연기했다. 이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아마 조르바의 느낌을 보여주는데 안소니 퀸만한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거친 마초의 육체와 고뇌하는 주름살을 표현하기엔 그가 딱이다. 만약 국내영화로 만든다면 조르바 역으로 김어준을 추천한다. 연기만 뒷받침된다면 그 이상의 선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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