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기사에 의하면 안경현은 사실상 두산 유니폼을 벗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더구나 껄끄러운 관계로 알려진 김경문감독이 3년 재신임을 받은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중재해야 할 구단이 감독의 손을 들어준 이상 안경현의 이적 혹은 은퇴는 기정사실로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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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내용인데요. 기사가 사실이라면... 휴~ 두산팬 노릇하기 참 힘듭니다. 어떤 구단은 다른 팀 FA를 뺏어오는데 혈안이 되어있는데 말이죠. 데려 오는건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지켜만 달라는 팬들의 소박한 요구인데... 두산에겐 소박한 바램이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왜 매년 스토브리그만 되면 두산팬들은 가슴을 졸여야 하는지, 이것도 두산팬의 운명인가요?

갑자기 뉴욕양키스의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가 떠오르네요. 2007년 5월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홈경기에서 7회말이 끝나자 조명은 스카이박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한 사나이를 비추죠. 바로 로저 클레멘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뉴욕팬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죠, 'it's a privilege to be back'. 마이클 조던의 'I'm back'에 버금가는 감동을 줬던 장면으로 기억되는데요. 휴스턴에서 다시 뉴욕으로의 컴백을 깜짝쇼 형식으로 선언한겁니다나이가 40을 훌쩍 넘어버린 옛 스타의 컴백에 뉴욕팬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환호로 답했구요벅찬 감동으로 양키 스타디움은 흥분의 도가니로 들썩거렸습니다. 당시의 라디오 중계를 인터넷에서 찾았는데요. 한번 들어보시지요.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지 않나요?


팬들이 원하는게 바로 이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팬들이 오랜 기간 구단과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이상, 그들의 추억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도 구단이 팬들에게 갖춰야 할 예의거든요. 구단이 사적인 감정으로 프랜차이즈 스타를 홀대한다면, 두산이 안경현에게 그런다는건 아니지만, 팬들의 추억을 뇌에서 이식수술로 제거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설사 뉴욕에서 로켓맨이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뉴욕팬에겐 아쉬움일 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도 생각을 해봐야 하구요. 프랜차이즈의 가치는 누차 얘기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거든요.

안경현을 바라보는 우모의 생각은 참 복잡미묘합니다. 안경현도 두산의 보물이지만, 김경문감독도 두산의 프랜차이즈였고 뛰어난 감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안경현과 김경문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다만 양측이 타협점을 찾아서, 예를 들면 안경현의 플레잉코치 기용이 되겠네요, 양측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안되면 안경현이 다른 팀에서 뛰다가 클레멘스처럼 잠실구장에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도 상상해 봅니다. 아마 두산팬들은 눈물로 그를 환영하지 않을까요? 마치 객지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큰아들을 맞는 어머니처럼...


야구 관련 포스팅을 한 10일간 안썼습니다. 지난 한국시리즈 패배의 충격이 가시려면 야구와 격리된 최소한의 감정정화 기간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가급적 관심도 끊었습니다만, 홍성흔 관련 소식에 자판앞에 앉지 않을 수 없게 하네요. 그리고 우모가 어떻게 야구없이 살 수 있나요? 자고로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사는 법입니다.

두산이 올해도 FA 때문에 팬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군요. 올해 FA는 김동주, 홍성흔, 이혜천인데요. 김동주은 팬들이 보내주기는 싫지만 보내줄 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구요. 이혜천도 한번쯤 본인을 위해 일본 프로야구 경험을 갖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꺼라는 생각에 이별할 자세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홍성흔은 절대 안됩니다. 홍성흔을 파는건 두산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홍성흔의 가치는 여러 사람들이 수치를 들어 얘기합니다. 혹자는 올시즌 타율을 들어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구요. 혹자는 수비 포메이션의 한계를 들어 FA 가치가 떨어진다고도 합니다. 뭐 다 맞는 말입니다. 현재 스코어로만 보면 홍성흔은 타자로서는 매력있지만, 야수로서는 그닥 매력이 없는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홍성흔을 타자와 야수로만 평가한다면 그 사람은 야구를 숫자로만 보는 사람입니다. 100m 높이의 빙하를 눈에 보이는 크기로만 짐작하면 안되죠. 수면하에는 1,000m의 거대한 빙산이 숨어 있습니다.

저는 베어스의 홍성흔을 양키스의 데릭 지터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데릭 지터가 양키스가 아닌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면, 홍성흔도 당연히 두산 유니폼 외에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두산에 어울리고, 두산스러운, 그리고 두산에서 가장 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홍성흔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잠깐 지터에 대해 언급하면, 지터는 한 때 A-Rod, 가르시아 파라와 함께 메이저리그 3대 유격수라고 꼽혔던 뉴욕양키스의 간판선수죠. 공격도 좋아서 늘 3할 언저리를 유지하구요. 작전 수행능력도 훌륭해서 양키스에서 붙박이 2번을 맡고 있습니다. 찬스에도 강한 면이 있구요. 또 지터에게 허슬플레이도 빼놓을 수 없죠. 여러모로 훌륭한 선수입니다. 외무도 수려해서 마돈나 등 여러 배우들과 염문설을 뿌리기도 했구요. 하지만 데릭 지터를 수식하는 최고의 핵심어는 바로 리더십입니다. 그의 리더십은 양키스의 전통을 잇는 상징이 되었고, 그를 중심으로 선수들이 뭉치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A-Rod도 양키스에 입단했을 때는 지터에게 유격수를 내놔야만 했고, 말년에 지터에게 미움을 사 팀을 옮겼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지터의 팀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물론 이런 지터의 리더십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에서 비롯되구요.


홍성흔 역시 기록으로 보면 데릭 지터만큼은 아니어도, 한국 프로야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선수임에 틀림 없습니다. 0.331이라는 올시즌 타율도 그렇지만, 포수로서 기록한 0.291이라는 통산 타율도 대단하죠. 통산 홈런도 107개를 기록중입니다. 포수로서도 홍성흔은 두드러진 실력을 보유한 선수였구요. 포수왕국이라는 두산의 안방마님 자리를 대번에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진갑용, 최기문을 트레이드 시킬 정도였으니 신인 때의 홍성흔의 기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덕분에 시드니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주전포수를 차지하곤 했구요.

하지만 이런 외적인 홍성흔의 가치보다 더욱 빛나는 것이 바로 홍성흔의 허슬플레이와 리더십입니다. 지터와 동일합니다. 단언컨대 현재 국내 프로야구 선수 중 홍성흔이 이 분야 최고라고 평가하는데요. 실력은 뛰어나지만 이기적인 선수들, 구체적으로 이름은 말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팀에 마이너스입니다. 그런 선수들 두산에 온다면 쌍수를 들고 말리겠습니다. 한 트럭으로 줘도 필요 없습니다. 농구는 마이클 조던만 있으면 우승할 수 있지만, 야구는 엘렉스 로드리게스만으로는 우승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홍성흔의 이타적 심성은 두산의 큰 자산이 아닐 수 없죠. 돈으로 따질 성질이 아닙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은 프랜차이즈로서의 홍성흔의 가치입니다. 홍성흔은 타팀 팬들에게 미워할 수는 있어도 싫어할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타팀 팬들도 그의 허슬플레이를 보면 속이 뒤집어지지만, 덕아웃에서 동료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면 마냥 부러워하거든요. 그게 바로 홍성흔입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로 인해 다른 선수들까지 활력이 전이되는, 바이러스 숙주같은 역할을 하는게 홍성흔이구요.

개인적으로는 10년 후 홍성흔이 박철순과 함께 두산의 레젼드로 남아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21번 영구결번에 이어 22번 영구결번도 해야 하구요. 코치, 감독도 오래 해서 허슬플레이와 팀 케미스트리가 두산베어스와 동의어가 되도록 버팀목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허슬플레이를 하지 않는 선수는 두산에서 주전이 될 수 없고, 이기적인 선수는 아예 두산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 전통도 세웠으면 하네요. 뭐 이미 허슬플레이는 두산의 대명사가 되었지만요.

다행히 두산단장도 홍성흔 없는 두산을 상상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고 하니 한숨은 놓입니다만, 홍성흔을 놓치는 경우는 털끝 만큼의 가능성도 두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팀 FA 영입은 한해 농사에만 도움되지만, 두산맨 홍성흔은 구단 역사를 계승, 발전시켜가는 의미가 있거든요. 홍성흔 없는 두산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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