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가기로 한건 순전히 꽃구경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한적하게 산책하면서 좋은 경치를 둘러보고 싶었다. 여의도는 벚꽃 보다 사람들에 치여 고생만 할게 뻔하고, 집 근처는 봄나들이 하는 맛이 안나 찾은게 청남대다. 청남대는 그 외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길도 있어 볼거리가  많지 싶었다.

 

청남대 자동차 예약한 날은 4월 20일. 근데 아침부터 대전엔 눈이 내렸다. 처음엔 진눈깨비인가 했는데 나중엔 함박눈이더라. 4월말에 내리는 함박눈이라니, 게다가 봄꽃구경 가는 날에... 쩝... 그러나 어차피 예약한건 오후이니, 오후에 개인 날씨를 기대했다. 오후 청남대에 도착할 즈음엔 눈이 비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풀린건 아니고, 눈이나 비나 스산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람이 찹다.

 

그래도 제법 관람객들은 많았다. 전국 각 지방에서 일부러 찾는 관광버스가 제법 되니 날씨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분들 중 상당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로 찾는 분들이지 싶었다. 사진 찍는 패턴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 게시판과 동상 주변엔 장년층들이 많았다. 젊은 층은 대개 노대통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박정희 동상 주변을 지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 "이래 산게 그래도 다~ 박대통령 덕분 아이가". 그래, 우리는 언제부턴가 옳게 사는 법 보다 잘 사는 법을 더 숭상하게 되었다. 어떻게 되든지 남보다 잘만 살면 과정은 사리살짝 무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 생각이 국가적으로 확대되면 국격으로 둔갑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축소되면 출세라 불리는 법이다.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눈과 비 때문에 산책로는 걷기 힘들 정도로 질었다. 여유있게 산책하면서 계절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여건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김대중 대통령이 주로 책을 읽었던 정자까지를 뒤로 한채 발길을 돌렸다. 아쉽지만 4월 20일 청남대는 봄꽃 보다 늦은 봄눈으로 기억되지 싶다. 한가지 더 있다면 자전거 타는 노무현 대통령의 넉넉한 웃음 정도.

 


이런 날인걸 알았기에 하늘이 비를 내리시는건지 모르지만,
마음의 비가 강물이 되어 주룩주룩 내리네요.

혹시 이 비가 그분이 하늘에서 흘리시는 눈물은 아닐런지...

끛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다는 어떤 광고를 보니,
정말 봄날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밤이 깊으면 새벽 머지 않았다는거 믿습니다.
그립네요.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를 사랑했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흔히들 민주화의 투사로 많이 묘사하지만, 그분이 진정 되고 싶었던건 문화 대통령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나라는 군사강국도 아니요, 경제강국도 아닌 문화대국이다' 라는 김구 선생의 말씀에 가장 근접한 분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구요. 정치노선과 철학이 김구 선생을 연상케 하는 정치인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기간중 최초로 예산의 1%를 문화분야에 지출했었죠. 문화의 중요성을 말로만 뇌까리는 정치꾼이 아닌 진정으로 실천에 옮긴 분이었습니다. 서편제라는 영화를 좋아해서 스스로 홍보도 많이 했고, 그래서 서편제가 실제 대박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통령이 어떤 영화를 보느냐가 영화 홍보담당자들에게는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되기도 했죠. 대개 정치인이라면 홍보차 VIP석에서 보긴 하지만, 중간에 일정을 핑계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일쑤였는데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진정으로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진정성으로 느껴지는 지도자였습니다. 문화라는게 결국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소탈한 대통령의 문화사랑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가 보네요.

그런 두분을 몇달 사이에 모두 잃고 나니 황망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누가 그랬듯이 이제 하느님이 대한민국을 버리는 일만 남지 않았나 싶네요. 부디 지역감정 없는 좋은 곳으로 가서 편안히 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슬프네요.


미국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당선됐습니다. 소위 서구권이라고 하는 나라들 중에서 처음으로 유색인종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었는데요. 미국의 실용정신과 유연한 정치 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로 해석할 수 있겠죠. 현재의 기세로 볼 때 당분간 오바마 열풍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를 휘몰아칠 것 같습니다.

오바마 당선에 대한 평가로 정치, 경제, 외교 등 여러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데요. 저는 오바마 시대를 보는 관점을 지난 노무현 시대와 어떻게 다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노무현과 비슷한 정치적 배경, 지지기반, 당선과정을 겪었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미국판 노무현 시대가 오바마를 통해 구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유일한 대통령이었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을 주류 중의 주류로 본다면, 김영삼은 주류 중의 비주류, 김대중은 비주류 중의 주류라고 할 수 있구요. 노무현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입니다. 우선 노무현은 정치적 지향점이 군사세력과 뚜렷이 대별되기에 비주류구요. 지향점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에서 비주류의 주류와 차별적입니다. 노무현은 상고출신이라는 점에서 비주류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386 혹은 운동권 출신들과도 구별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성 정치인 최후의 보루인 지역정치에 반기를 든 점이 비주류의 주류와 괘를 달리합니다. 결국 지지세력들의 성향도 그에 따라 달라지구요. 노무현대통령은 비교적 정치, 경제적 소외세력을 대변했더랬죠. 

오바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인종적으로는 케냐 쪽의 흑인이구요.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에 가깝다는 설이 있습니다. 과거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이슬람을 믿었다는 설이 난무했죠. 진위가 밝혀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인가요? 오바마의 미들네임은 미국인에게 반감이 높은 후세인입니다. 그의 지지층도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유색인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네요. 지금까지 WASP가 미국을 이끌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혁명적인 변화죠. 

통상 이런 비주류 대통령이 행정권력을 장악했을 때 기득권층의 반발은 만만치 않습니다. 노무현의 경우 임기 내내 온갖 견제에 시달렸는데요. 청와대 주인이라는 명함만으로 수십년간 구축해온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죠. 거대한 빙하를 북극곰 한마리가 두드린다고 무너지나요? 균열만 갈 뿐입니다.

오바마도 노무현과 유사한 사례를 밟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바마의 과거에 대한 미국판 색깔론이 나올 수도 있고, 내심 인종주의에 물든 백인들이 오바마노믹스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기에, 미국 상류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는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바마가 어떤 정치적 실수를 하게되면 미국 주류층의 가슴속에 깔린 흑인혐오주의가 오바마에 대한 거센 공격으로 표출될 수 있을겁니다. 

노무현은 이런 기득권층의 저항에 굴복하지 않아서 고된 임기를 보냈는데요.
오바마는 어떻게 헤쳐나갈지 참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투명하게 개방되어 있고, 한국과 달리 언론이 악의적으로 저주를 퍼붓는 비이성적인 행태를 보이지는 않기에, 오바마는 노무현과는 달리 순항하리라 믿습니다. 이런게 한국과 미국의 사회적 성숙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구요. 그 차이는 오바마의 미국이 노무현의 한국과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날겁니다.

덧글 1...
그래도 오바마는 오바마고 노무현은 노무현입니다. 비슷한 지지층을 기반한다고 해서 정치철학까지 같을 순 없겠죠. 미국에서의 우파 좌파 구분과 한국에서의 그것은 기준 자체가 다르기에 두 사람의 정책노선을 단순비교하는 것도 그닥 의미는 없구요. 단지 정치역학관계에서 오바마와 노무현이 유사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 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오해는 없으시길...

덧글 2...
이 블로그에서는 정치적인 이야기는 삼간다고 원칙을 세웠었는데요. 어찌어찌 하다보니 약간 탈선하게 되었네요. 앞으론 왠만하면 준수하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