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일의 기억'은 일본의 세계적인 영화배우 와타나베 켄이 주연을 맡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화입니다. 와타나베 켄은 백혈병을 앓았다가 재기한걸로도 유명한데, 이 영화에서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연기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가요. 알츠하이머 환자 역을 리얼하게 연기하네요. 에미코 역을 맡은 히쿠치 카나코도 잘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대책없이 잔잔합니다. 어느 평범한 직장인이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되면서 직장에서 떠나고, 사회에서도 퇴출되고, 가족과도 어색해지는... 결국 혼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이야기죠. '내 머리속의 지우개' 라는 영화와도 비슷할 것 같은데 보지 못해 모르겠네요. 근데 이 영화는 왠지 주인공이 환자가 아니라 중년남성인 것처럼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평생 직장만을 위해 살아온 남자가 문득 사회에서 버림받았을 때 느끼는 소외감, 가족과 어울릴 수 없는 외로움, 무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은 비단 알츠하이머 환자만의 얘기는 아니죠. 은퇴한 중년이라면 누구나 사에키처럼 고뇌할 수 있을겁니다. 그런 케이스는 흔히 찾을 수 있구요.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중년남자들도 순수했던 과거로의 여행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

하지만 영화에서는 에미코와의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오히려 에미코를 기억에서 지우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아내 에미코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죠. 알츠하이머 환자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기에 어쩔 수는 없지만 참 슬프네요. 그리고 사에키가 에미코의 이름을 새긴 찻잔을 불에서 꺼냈을 때 컵의 귀가 깨져있던건 에미코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사에키 : 저는 역까지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에미코 : 네
사에키 : 저기... 저는 사에키입니다. 사에키 마사유키, 당신은..?
에미코 : 에미코에요. 가지에 달린 열매 에미코
사에키 : 에미코상이라... 좋은 이름이군요

남편을 찾아온 에미코와 사에키의 대화인데요. 에미코는 자신을 못알아보는 남편을 확인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은 사에키도 그렇지만 에미코도 안타깝네요. 사에키는 아름다운 에미코를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에미코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해야되나... 그렇게 에미코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애잔한 풍경으로 대신하고 영화는 여운을 남기며 끝맺습니다.

아... 기억을 더듬어보니 영화 도입부에 에미코가 사에키와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왔네요. 사에키가 에미코라고 쓰고 구웠던 바로 그 찻잔... 결국 에미코는 사에키의 곁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결론이군요. 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