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스포츠 영화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스포츠의 리얼리티를 영화가 온전히 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종목이건 실제 경기의 움직임을 그대로 화면에 옮길 수는 없다. 록키가 그랬고 내츄럴이 그랬다. 어설프게 슬로우비디오로 보여주는게 그나마 현실감있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방식의 영화가 스포츠 영화의 대안으로 떠오른게 아닌가 싶다. 실제 스토리가 주는 감동도 영화 못지 않을테니. 


우연히 본 '굿바이 홈런'이라는 영화가 그런 케이스다. 이 영화는 3인칭 시점의 카메라 시각만 존재한다. 연기자는 없다. 100% 리얼이니까. 배경은 야구의 불모지 원주고등학교.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강원도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강원도는 프로야구팀은 물론 이름값 있는 대학팀이 없다. 고등학교도 다르지 않다. 강원도의 대표선수인 원주고는 이긴 기억보다 진 기억이 많다. 영화가 나오는 2009년의 원주고는 각종 전국대회의 1차전 탈락 단골손님일 뿐 아니라,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야구 같지 않은 야구를 하는 팀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선수들도 패배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외지에서 온 학생들은 그 학교에서 밀려나 원주고로 전학온 경우가 많으니 그럴 수 밖에. 그러고 보니 개천에서 용난건 바로 원주고 출신 안경현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영화에서 원주고는 결국 화랑기 대회에서 4강의 기적을 이룬다. 감독과 선수들이 보여주는 투혼은 영화 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3학년들은 졸업 후  프로 진출이나 대학 진학에 실패하는 좌절을 맛보게 된다. 10%만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는 피라미드 구조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90%를 위해서 사회가 해줄 수 있는건 무엇인지. 그들에게 야구란 무엇인지. 그저 경쟁사회에서 벌어지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만 치부하기엔 뭔가 뒷맛이 씁쓸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영화는 사회에서 선택받지 못한 마이너리티를 위한 영화다. 야구는 그저 소재일 뿐. 


그래서 그런가? 영화 제목 '굿바이 홈런'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야구에서 굿바이 홈런은 해피엔딩이다.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다는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그러나 영화에서는 홈런으로 상징되는 야구와의 이별을 뜻한다. 더 이상 홈런의 환희를 접할 수 없는 이들에게 굿바이 홈런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법이다. 야구와 다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이막인생의 시작이 바로 '굿바이 홈런'인 것이다.


참고로 원주고 감독으로 나오는 안병원은 과거 현대 출신 투수다. 넥센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귀공자 스타일의 얼굴은 예전 그대로라 반가웠다. 화랑기 대회 4강전 마지막 공격을 앞둔  선수들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대충 이런 요지였다. "지금 이기고 지는건 중요하지 않아. 끝까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으로 최선을 다해야 돼. 왜? 야구는 계속 되어야 하니까." 앞으로 고교야구를 보면 원주고를 눈여겨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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