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을 둘러싸고 상반된 시각의 영화 두개를 비교하면 재밌을꺼 같은데요. 하나는 '고고70'이구요. 또 하나는 '님은 먼곳에' 입니다. '고고70'은 월남전으로 인해 초조해진 박정희가 국내 연예계를 탄압하면서 벌어지는 락밴드의 저항이 주제였구요. '님은 먼곳에'는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떠나는 한국여인의 질긴 생명력이 주제였죠. 굳이 두 영화를 구분하자면 '고고70'이 사회가 규정한 관습에 순응해온 주인공이 방황하는 영화라면, '님은 먼곳에'는 국가가 압박하는 체제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먼저 '고고70'을 봐서 그런지 '님은 먼곳에'는 시나리오에서 여러 허점들을 노출하더군요. 현실적인 문제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죠. 가령, 국가와는 상관없이 돈벌러가는 위문공연단이 버젖이 월남파병선을 타고 가는 것이며, 군인도 아닌 민간인 신분의 여자가 남편을 찾아 전쟁터로 간다는 설정도 그렇거니와, 습격당하는 부대에서 위문공연단 트럭만 살아 나온다는 설정도 그닥 설득력을 얻기는 힘듭니다. '즐거운 인생', '왕의 남자'를 감독했던 이준익감독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의외네요.


수애는 영화 내내 수동적 위치에 처한 피해자입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대구로 시집가 가혹한 시집살이를 하고 대를 잇기를 강요받죠. 하지만 남편은 부인 대신 애인에게 관심이 팔려있고, 설상가상으로 아무 말없이 월남으로 파병가구요. 이에 대한 시어머니의 분노는 애꿎은 수애에게만 집중되고, 수애는 견디다 못해 남편을 찾아 월남으로 떠납니다. 왜 떠나는지 만나서 뭐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없이 수애는 그저 맹목적으로 전쟁터로 돌진하죠. 미국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는 구해서 돌아온다는 타당한 목적성이라도 있었는데... 게다가 같이 간 공연단 대표 정진영은 사기꾼에 가까운 인물로 남편을 찾아준다는 말만 하고 수애를 이용하려고만 하구요. 하지만 정작 남편을 찾아낸건 피해자 수애였습니다. 수애의 홀홀단신 몸바친 노력의 산물이 없었다면, 남편찾기는 커녕 위문공연단도 역시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을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동적이었던 수애가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하면서 비로소 영화는 실마리를 찾아가게 된 셈이죠.

결국 영화는 한국 여인의 강인한 잡초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월남전을 배경으로 했을 뿐이었고, 전쟁은 철이 덜든 남편을 위한 학습장에 불과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남편과 상봉한 수애가 껴안지 않고 따귀를 때린 점, 남편은 눈물을 떨구고 무릎을 꿇은 점 등을 봐도 알 수 있네요.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하지만, 보면서 '어 저게 가능한 얘기야?' 라고 관객이 의심하는 순간,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게 픽션인 영화를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 이유일테구요.


영화 '고고70'은 음악과 시나리오가 맛있게 버무러진 샐러드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잘짜여진 뮤지컬 영화를 보는 듯한데요. 조승우야 워낙 뮤지컬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으니 두 말할 필요없지만, 의외로 신민아도 노래를 색감있게 잘 부르더군요. 춤솜씨도 괜챦구요. 신민아의 매력이 조승우만큼 영화에 어필할 줄은 몰랐습니다. 짜임새있는 시나리오에 잘 녹아든 연기에 탄탄한 연출이 된 영화를 보는건 언제나 유쾌하죠. '고고70'이 딱 그런 영화네요.


영화는 1970년대 락밴드 1세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메시지없는 음악영화는 아니구요. 암울한 유신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산업논리에 억압받는 문화논리의 항거가 담겨있죠. 월남이 공산화 된 이후, 박정희는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목하에 대대적인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을 하는데요. 해외토픽에 나올 만한 코미디같은 일이었지만, 전 국민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죠. 그리고 이어지는 야간통행금지. 국민을 오로지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하는 순종적인 집단으로 길들이려는 유신정권의 만행이었습니다.

이런 숨도 못쉬는 사회분위기에 나타난 락밴드 데블스는 젊은이들에게 짧게나마 자유를 느끼게 해줬는데요. 락과 고고댄스라는 새로운 유행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합니다. 야간통행금지가 풀리는 새벽 4시까지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는건 데블스가 처음이었으니 그럴만도 했겠죠. 하지만 당연히 오래가지는 못하구요.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연예계를 시범케이스 삼은 정권의 철퇴가 내리치자 모든 음악활동은 긴 침묵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장발단속, 금지곡, 대마초사건 등으로 사회의 쓰레기로 낙인찍혀 퇴물로 전락하죠.


하지만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건 내재된 두려움뿐이란걸 깨닫고 그들은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최루탄이 터지는 공연장에서 그들은 도망가는 대신 락을 선택하죠. 환호하는 젊음은 최루탄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저항정신이 바로 락이죠.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슬로우비디오로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뒤로 하고...

하지만 생각해보면요. 데블스는 단순한 70년대의 뜨내기 밴드는 아니었나 싶어요. 영화 말미에도 나오지만 1세대 락밴드들에 대한 상징이었는데요. 유신이라는 획일적 집단주의에 반기를 든 용기있는 자유정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저항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 있었구요. 곱씹어 볼수록 괜챦은 영화네요, '고고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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