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준우승 이후 제 근육에서 18% 정도 힘이 빠졌습니다. 이걸 '한국시리즈 패배 후유증'이라고 하는데요. 아마선수에게는 '은메달 후유증'과 비슷하겠네요. 증상으로는 왠지 행동반경이 좁아들고, 말수가 적어지고, 먼 산을 응시하는 횟수가 늘어나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는 경우가 급격히 상승하게 됩니다. 경험상 한 1~2주일은 지속되는데요. 다른 특효약은 없구요. 그냥 시간이 약입니다. 주위에서는 그냥 내버려 두는게 상책인데, 괜히 어설프게 위로하려다 아픈 기억을 건드리면 후유증이 1~2일 정도 더 늘어나기도 하죠.

요새 이런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두산베어스 홈페이지도 안가구요. 네이버 야구코너도 안가구요. 당연히 동영상도 보지 않습니다. 그저 가능하면 야구와 관련된 그 어떤 것과도 조우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죠. 그냥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애써 담담히 처리하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출근하고, 점심시간이면 수영하고, 퇴근 무렵엔 집에 가고, 약속있으면 만나러 가고... 

시간이 지나면 담담히 패배를 돌이켜볼 수 있는 때가 오겠지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도 분명 올겁니다. 인간에겐 망각이라는게 있으니까요. 그 날이 빨리 왔음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이렇게 아파했다는 것만큼은 기억하겠죠. 생채기는 없어져도 딱지는 남는 것처럼... 또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도 겹쳐 더더욱 우울한 날을 맞고 있는데요. 역시 시간이 약이라 믿고 있습니다.

원래 계절 중에 가을을 가장 좋아라 해서 지금까지 찬란한 10월로 기억되었는데,
2008년은 말 그대로 고독한 가을이네요.
얼렁 지나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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