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과 SK의 한국시리즈 진검승부 '경인선 잔혹사' 시즌 2가 드디어 개봉되었습니다.
작년 시즌 1은 두산이 초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했으나, 집단 난투극 이후 어이없이 퇴각했던 비극으로 끝났구요.
올해 시즌 2는 두산의 대반격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한국시리즈는 플레이오프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습니다. 플레이오프가 불꽃튀는 타격전이었다면, 한국시리즈는 팽팽한 투수전이었죠. 김광현은 여느 때처럼 명품투구를 이어갔고 랜들은 SK에 강했던 전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호투를 보여줬습니다. 삼성전에서는 툭하면 점수를 내곤 했는데, 역시 SK는 올시즌 1위팀답네요. 한점빼기가 쉽지만은 않더군요. 결국 만날만한 팀들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산이 서전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른바 '경인선 잔혹사' 시즌2의 첫 경기 관전평을 시작합니다.
1. SK의 '생각대로' 야구 Vs 두산의 '생각하는' 야구
SK는 감독 중심의 야구를 지향하구요. 반면에 두산은 선수 중심의 야구를 추구하죠. 한국 프로야구 스몰볼의 대명사 SK와, 빅볼의 상징인 두산의 야구는 그래서 팀컬러도 확연히 차이납니다. 한마디로 SK는 김성근 감독의 '생각대로' 하는 야구라면, 두산은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야구를 한다고 볼 수 있죠.
1차전에서도 그런 차이가 드러났는데요. 갑자기 두산선수들이 번트를 많이 댔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패턴이었죠. 판단컨대 김광현의 위력적인 공을 공략하기 위한 선수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싶네요. 김경문감독의 작전과는 별개라는거죠. 그도 그럴 것이 홍성흔이 기습번트를 댔구요. 5회에는 무사 1루에서 전상렬이 의도적으로 번트를 했구요. 다음 타자 이종욱도 이어 스퀴즈를 시도했구요. 그 다음 타자 오재원도 역시 바로 번트를 시도했습니다. 전상렬부터 세타자 연속 번트 시도는 한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상당히 드문 일인데요.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자발적인 선택이 번트로 나타난겁니다. 결국 두산은 5회초 1점을 뽑아냈죠.
반면 SK는 작전야구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5회말 최정이 실책으로 나가자 바로 번트를 시도하죠. 비록 나주환이 실패했지만, 능히 김성근감독의 작전이었음은 말할 필요없구요. 이어지는 1사 1, 3루에서 김성근감독은 또 뭔가 작전을 냈습니다. 이를 눈치챈 랜들이 3루에 견제하는 척하며 1루를 보자 1루주자 조동화는 이미 스타트를 끊은 후였구요. 결국 런다운 플레이로 조동화는 아웃되고 3루주자는 홈으로 쇄도하지 못했습니다. 김성근감독의 작전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채 실패로 돌아간거죠. 이게 결국은 경기의 흐름을 뒤바꾼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2. 진정한 2008 MVP는 누구인가? 김현수 Vs 김광현
1차전 경기는 초반 김광현이 볼넷을 남발하면서 시작했는데요. 두산이 득점찬스에서 적시타 부족으로 점수를 못내면서 힘들게 경기를 이끌려 갔습니다. 반대로 국가대표 좌완 김광현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김현수는 무사 1, 2루, 2사 1루의 찬스, 그리고 6회 선두타자로 나와 김광현에게 연속삼진을 거푸 먹으면서 명성을 퇴색시켰구요.
김광현이 참 좋은 투수라는게요.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했으면서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분명 어떤 위기에서도 의연한 에이스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죠. 김광현은 때로는 삼진으로, 때로는 평범한 땅볼로, 플라이로 두산타자들을 요리해 갔습니다. 하지만 김광현은 6회에 김동주의 2루타, 고영민의 볼넷 이후 대타 최준석에게 싹쓸이 2루타를 맞으면서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말았죠. 이대수와의 승부를 위해 고영민을 볼넷으로 보낸게 화근이었습니다. 최준석의 타구가 펜스를 맞히긴 했지만 좌익수 쪽이어서 1루주자가 홈에 들어오긴 무리가 아니었나 싶었는데요 결국 고영민의 두려움없는 질주가 2타점으로 연결시켰습니다. 김광현이 3차전에 나온다 해도 이번 경험을 중심으로 대처한다면 쳐내지 못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대신 김현수는 김광현이 내려간 이후 제 컨디션을 찾았습니다. 7회 1사 2루에서 정우람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깨끗한 우전안타를 만든겁니다. 3연속 삼진의 수모를 털어내는, 그리고 앞으로의 경기에서의 화력을 예고하는 한방이라 평가하고 싶네요. 이 안타로 두산은 SK의 추격의지를 꺽어놨음은 물론이구요. SK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8회초 2사 만루에서는 이승호를 상대로 삼진을 또 당하면서 MVP 행방을 오리무중에 빠지게 했네요. 어쨌든 MVP 경쟁은 타격 3관왕 김현수와 투수 2관왕의 김광현의 향후 활약에 의해 판가름날 것으로 보입니다.
3. 지명타자의 지존을 가리자! 홍성흔 Vs 김재현
이번 경기 또 하나의 대결은 홍성흔과 김재현의 지명타자 대결이었습니다. 두명 모두 팀의 고참으로서 공격에서 한방을 날려줄 미션이 주어졌는데요. 미션은 김재현이 먼저 성공했네요.
김재현은 첫 타석에서 랜들의 몸쪽 직구를 통타해 중월 홈런을 뽑아냈죠. 두산킬러답게 SK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하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과거 LG시절부터 이어온 두산에 강한 모습을 또 보여줬네요. 작년 한국시리즈 때도 김재현의 홈런으로 분위기가 갈렸었는데 말이죠. 그걸 잘 아는 김성근감독이 4번으로 기용한건 당연한 작전이었구요.
반면 홍성흔은 첫타석은 평범한 땅볼로 물러났지만 4회 기습번트로 두산의 첫 안타를 만들어냈습니다. 빅볼의 선두주자인 두산은 5회 이전에 번트를 대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쐐기를 박는 통쾌한 기습번트 안타를 만든거죠. 3루수 최정도 놀랐지만, 김광현도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역시 홍성흔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스타입니다.
그리고 9회초 기세를 올리고 있던 이승호를 상대로 중월홈런을 날립니다. 홍성흔의 스타성은 뭐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쐐기를 박는 홈런을 날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신흥 간지맨 오재원의 상승세를 견제하는 듯한 심플하면서도 묵직한 세리머니, 정말 완전 초감격입니다. 순간 관중석에서는 'No.22 홍간지 한방' 이라는 격문이 보였구요. 홍성흔의 홈런으로 이제 김동주만 터져주면 시리즈는 정말 제 예상대로 의외로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답니다. 그게 분위기 탄 두산의 힘이니까요.
4. 아버지의 이름으로! 랜들
1차전 선발 랜들은 부친상을 당한 상태였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랜들은 SK를 이기기 위해, 팀의 우승을 위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구요. 과거 리오스를 연상시키는 감동적인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당시 리오스도 시즌 중에 부친상으로 출국하면서 공을 주섬주섬 챙겨 갔었죠. 그리고 다녀온 후 바로 선발로 등판해 승리를 따냈구요. 랜들 역시 리오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눈물겨운 호투를 펼쳐줬습니다.
랜들은 5.1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SK 타선을 무력화시키며 승리를 낚았습니다. 그야말로 인천 앞바다에서 월척을 잡은겁니다. 아마 랜들은 공을 던지면서 아버지 생각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하늘에서 아버지가 지켜보시며 흐믓해 하셨을거구요. 이런 랜들의 투혼은 시리즈 내내 선수단의 단결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껍니다. 고맙습니다. 랜들!
5. 식빵 오재원, 오버 대신 희생을 택하다
오재원의 타격폼이 또 바뀌었습니다. 누가 오재원의 변천사를 동영상으로 비교분석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초기에 이치로같은 타격폼에서 타격 스탠스를 넓히는걸로 바꾸더니, 오늘은 배트를 한뼘이나 짧게 쥐고 치더군요. 아마 플레이오프와는 달리 진루타에 집중하려는 본인의 판단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안타는 뽑지 못했구요. 볼넷, 볼넷, 병살, 희생번트, 삼진으로 마감했습니다. 롱다리 간지의 대명사 오똘의 전매특허인 레프트 스트레이트 세리머니를 못봐서 아쉽네요.
하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희생정신은 충분히 칭찬받을만 했습니다. 특히 4:2로 따라붙은 7회말 SK 박재상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으로 잡아 아웃시킨건 왜 오재원이 두산의 미래인가 보여주는 플레이였죠. 만약 빠졌다면 점수는 4:3, 그리고 분위기는 경기 종반 안개속에 빠질 뻔 했습니다. 이제는 안경현의 허전함을 오재원이 채워주고 있네요. 김경문감독의 안목과 결단력이 새삼 무섭기도 하고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아.. 그럼에도 아쉬운 우리의 안쌤... ㅜ.ㅜ)
6. 박경완에 묶인 발야구, 방향 선회 필요하다
지난 한국시리즈 패인 중에 하나는 박경완이었습니다. 이종욱, 고영민의 도루를 연거푸 잡아내면서 두산의 발은 꽁꽁 얼어붙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시리즈에서 두산의 첫 도루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고영민의 첫 도루는 실패했습니다. 정확히는 주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되었습니다. 분명히 카메라로는 세입이었지만 말이죠. 오심은 뭐 더 이상 얘기하진 말구요. 이제는 주루전략을 수정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발야구라고 반드시 뛸 필요는 없습니다. 뛸 듯한 위협만으로도 충분히 투수를 흔들 수 있거든요. 진정한 발야구는 한 베이스씩 더가는 센스로 발휘하고, 박경완이 견제하는 동안에는 뛰는 시늉만 하는 전략으로 수정하면 분명 SK 배터리는 헷갈릴 겁니다. 볼넷은 부수효과로 얻으면 되구요. 그러다 방심하면 불시에 한번 뛰어주면 되죠.^^
반면 SK는 채상병을 상대로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더군요. 아니 거의 유린 수준이었습니다. 채상병의 단점은 송구동작이 완만하고 송구하는 팔의 각도가 짧아 강한 공을 던질 수 없다는겁니다. 그래서 시즌 중에도 겨우 2할대의 도루저지율을 보여줬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SK 주자는 채상병에게 땡큐를 연발했습니다. 그래서 팬들은 채상병 대신 최승환을 기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경험탓인지 어쨌든 김경문감독은 채상병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SK도 두산 못지 않은 발빠른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뽀너스 #1. 오늘의 MVP
내맘대로 뽑는 1차전 MVP로 누구를 뽑을까 살짝 고민했는데요. 결국 랜들을 선택했습니다. 3.2이닝을 잘 막아준 이재우도 물론 훌륭했지만요. 선발투수가 열세인 상황에서 랜들의 선발승은 두산에게 희망 메시지나 다름 없습니다. 특히 부친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타자를 막아낸 점, 김재현의 홈런 외에 실점을 하지 않은 점, 위기 속에서도 침착한 플레이로 극복해낸 점 등은 MVP로 선정되기에 손색이 없네요. 랜들사마의 4차전도 기대해 봅니다. 흠... KBO도 랜들을 MVP로 선정했군요. 간만에 KBO와 호흡을 맞췄네요.
덧글 1...
자꾸 작년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리오스가 2:0 완봉승을 기록한 이후 김성근감독이 김광현을 올리는 꼼수를 선택했었죠. 당시 가능성있는 정도의 신인급 투수를 올림으로써 리오스와의 경기를 버리는 경기로 과감히 격하시켰는데요. 결국 이 꼼수 하나가 시리즈를 바꿔놨었죠. 오늘 패배로 혹시나 야신이 뭔가 다른 수를 생각해내지 않을까 일말의 불안감이 있습니다. 물론 그걸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금메달리스트 달감독이 있지만서두...
덧글 2...
흠... 관전평을 쓰고 나서 보니 달감독이 번트작전을 타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시한거라고 하네요. 저는 스스로 선택한줄 알았는데요. 1, 4회 찬스를 못이은 것이 번트작전의 이유라고 하네요.어쨌든 두산의 선수가 '생각하는 야구'는 시즌 내내 이어져왔구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도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 마지막 경기에서 이종욱의 스퀴즈 번트가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겠죠.
작년 시즌 1은 두산이 초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했으나, 집단 난투극 이후 어이없이 퇴각했던 비극으로 끝났구요.
올해 시즌 2는 두산의 대반격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한국시리즈는 플레이오프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습니다. 플레이오프가 불꽃튀는 타격전이었다면, 한국시리즈는 팽팽한 투수전이었죠. 김광현은 여느 때처럼 명품투구를 이어갔고 랜들은 SK에 강했던 전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호투를 보여줬습니다. 삼성전에서는 툭하면 점수를 내곤 했는데, 역시 SK는 올시즌 1위팀답네요. 한점빼기가 쉽지만은 않더군요. 결국 만날만한 팀들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산이 서전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른바 '경인선 잔혹사' 시즌2의 첫 경기 관전평을 시작합니다.
1. SK의 '생각대로' 야구 Vs 두산의 '생각하는' 야구
SK는 감독 중심의 야구를 지향하구요. 반면에 두산은 선수 중심의 야구를 추구하죠. 한국 프로야구 스몰볼의 대명사 SK와, 빅볼의 상징인 두산의 야구는 그래서 팀컬러도 확연히 차이납니다. 한마디로 SK는 김성근 감독의 '생각대로' 하는 야구라면, 두산은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야구를 한다고 볼 수 있죠.
1차전에서도 그런 차이가 드러났는데요. 갑자기 두산선수들이 번트를 많이 댔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패턴이었죠. 판단컨대 김광현의 위력적인 공을 공략하기 위한 선수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싶네요. 김경문감독의 작전과는 별개라는거죠. 그도 그럴 것이 홍성흔이 기습번트를 댔구요. 5회에는 무사 1루에서 전상렬이 의도적으로 번트를 했구요. 다음 타자 이종욱도 이어 스퀴즈를 시도했구요. 그 다음 타자 오재원도 역시 바로 번트를 시도했습니다. 전상렬부터 세타자 연속 번트 시도는 한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상당히 드문 일인데요.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자발적인 선택이 번트로 나타난겁니다. 결국 두산은 5회초 1점을 뽑아냈죠.
반면 SK는 작전야구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5회말 최정이 실책으로 나가자 바로 번트를 시도하죠. 비록 나주환이 실패했지만, 능히 김성근감독의 작전이었음은 말할 필요없구요. 이어지는 1사 1, 3루에서 김성근감독은 또 뭔가 작전을 냈습니다. 이를 눈치챈 랜들이 3루에 견제하는 척하며 1루를 보자 1루주자 조동화는 이미 스타트를 끊은 후였구요. 결국 런다운 플레이로 조동화는 아웃되고 3루주자는 홈으로 쇄도하지 못했습니다. 김성근감독의 작전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채 실패로 돌아간거죠. 이게 결국은 경기의 흐름을 뒤바꾼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2. 진정한 2008 MVP는 누구인가? 김현수 Vs 김광현
1차전 경기는 초반 김광현이 볼넷을 남발하면서 시작했는데요. 두산이 득점찬스에서 적시타 부족으로 점수를 못내면서 힘들게 경기를 이끌려 갔습니다. 반대로 국가대표 좌완 김광현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김현수는 무사 1, 2루, 2사 1루의 찬스, 그리고 6회 선두타자로 나와 김광현에게 연속삼진을 거푸 먹으면서 명성을 퇴색시켰구요.
김광현이 참 좋은 투수라는게요.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했으면서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분명 어떤 위기에서도 의연한 에이스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죠. 김광현은 때로는 삼진으로, 때로는 평범한 땅볼로, 플라이로 두산타자들을 요리해 갔습니다. 하지만 김광현은 6회에 김동주의 2루타, 고영민의 볼넷 이후 대타 최준석에게 싹쓸이 2루타를 맞으면서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말았죠. 이대수와의 승부를 위해 고영민을 볼넷으로 보낸게 화근이었습니다. 최준석의 타구가 펜스를 맞히긴 했지만 좌익수 쪽이어서 1루주자가 홈에 들어오긴 무리가 아니었나 싶었는데요 결국 고영민의 두려움없는 질주가 2타점으로 연결시켰습니다. 김광현이 3차전에 나온다 해도 이번 경험을 중심으로 대처한다면 쳐내지 못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대신 김현수는 김광현이 내려간 이후 제 컨디션을 찾았습니다. 7회 1사 2루에서 정우람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깨끗한 우전안타를 만든겁니다. 3연속 삼진의 수모를 털어내는, 그리고 앞으로의 경기에서의 화력을 예고하는 한방이라 평가하고 싶네요. 이 안타로 두산은 SK의 추격의지를 꺽어놨음은 물론이구요. SK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8회초 2사 만루에서는 이승호를 상대로 삼진을 또 당하면서 MVP 행방을 오리무중에 빠지게 했네요. 어쨌든 MVP 경쟁은 타격 3관왕 김현수와 투수 2관왕의 김광현의 향후 활약에 의해 판가름날 것으로 보입니다.
3. 지명타자의 지존을 가리자! 홍성흔 Vs 김재현
이번 경기 또 하나의 대결은 홍성흔과 김재현의 지명타자 대결이었습니다. 두명 모두 팀의 고참으로서 공격에서 한방을 날려줄 미션이 주어졌는데요. 미션은 김재현이 먼저 성공했네요.
김재현은 첫 타석에서 랜들의 몸쪽 직구를 통타해 중월 홈런을 뽑아냈죠. 두산킬러답게 SK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하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과거 LG시절부터 이어온 두산에 강한 모습을 또 보여줬네요. 작년 한국시리즈 때도 김재현의 홈런으로 분위기가 갈렸었는데 말이죠. 그걸 잘 아는 김성근감독이 4번으로 기용한건 당연한 작전이었구요.
반면 홍성흔은 첫타석은 평범한 땅볼로 물러났지만 4회 기습번트로 두산의 첫 안타를 만들어냈습니다. 빅볼의 선두주자인 두산은 5회 이전에 번트를 대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쐐기를 박는 통쾌한 기습번트 안타를 만든거죠. 3루수 최정도 놀랐지만, 김광현도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역시 홍성흔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스타입니다.
그리고 9회초 기세를 올리고 있던 이승호를 상대로 중월홈런을 날립니다. 홍성흔의 스타성은 뭐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쐐기를 박는 홈런을 날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신흥 간지맨 오재원의 상승세를 견제하는 듯한 심플하면서도 묵직한 세리머니, 정말 완전 초감격입니다. 순간 관중석에서는 'No.22 홍간지 한방' 이라는 격문이 보였구요. 홍성흔의 홈런으로 이제 김동주만 터져주면 시리즈는 정말 제 예상대로 의외로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답니다. 그게 분위기 탄 두산의 힘이니까요.
4. 아버지의 이름으로! 랜들
1차전 선발 랜들은 부친상을 당한 상태였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랜들은 SK를 이기기 위해, 팀의 우승을 위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구요. 과거 리오스를 연상시키는 감동적인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당시 리오스도 시즌 중에 부친상으로 출국하면서 공을 주섬주섬 챙겨 갔었죠. 그리고 다녀온 후 바로 선발로 등판해 승리를 따냈구요. 랜들 역시 리오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눈물겨운 호투를 펼쳐줬습니다.
랜들은 5.1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SK 타선을 무력화시키며 승리를 낚았습니다. 그야말로 인천 앞바다에서 월척을 잡은겁니다. 아마 랜들은 공을 던지면서 아버지 생각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하늘에서 아버지가 지켜보시며 흐믓해 하셨을거구요. 이런 랜들의 투혼은 시리즈 내내 선수단의 단결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껍니다. 고맙습니다. 랜들!
5. 식빵 오재원, 오버 대신 희생을 택하다
오재원의 타격폼이 또 바뀌었습니다. 누가 오재원의 변천사를 동영상으로 비교분석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초기에 이치로같은 타격폼에서 타격 스탠스를 넓히는걸로 바꾸더니, 오늘은 배트를 한뼘이나 짧게 쥐고 치더군요. 아마 플레이오프와는 달리 진루타에 집중하려는 본인의 판단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안타는 뽑지 못했구요. 볼넷, 볼넷, 병살, 희생번트, 삼진으로 마감했습니다. 롱다리 간지의 대명사 오똘의 전매특허인 레프트 스트레이트 세리머니를 못봐서 아쉽네요.
하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희생정신은 충분히 칭찬받을만 했습니다. 특히 4:2로 따라붙은 7회말 SK 박재상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으로 잡아 아웃시킨건 왜 오재원이 두산의 미래인가 보여주는 플레이였죠. 만약 빠졌다면 점수는 4:3, 그리고 분위기는 경기 종반 안개속에 빠질 뻔 했습니다. 이제는 안경현의 허전함을 오재원이 채워주고 있네요. 김경문감독의 안목과 결단력이 새삼 무섭기도 하고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아.. 그럼에도 아쉬운 우리의 안쌤... ㅜ.ㅜ)
6. 박경완에 묶인 발야구, 방향 선회 필요하다
지난 한국시리즈 패인 중에 하나는 박경완이었습니다. 이종욱, 고영민의 도루를 연거푸 잡아내면서 두산의 발은 꽁꽁 얼어붙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시리즈에서 두산의 첫 도루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고영민의 첫 도루는 실패했습니다. 정확히는 주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되었습니다. 분명히 카메라로는 세입이었지만 말이죠. 오심은 뭐 더 이상 얘기하진 말구요. 이제는 주루전략을 수정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발야구라고 반드시 뛸 필요는 없습니다. 뛸 듯한 위협만으로도 충분히 투수를 흔들 수 있거든요. 진정한 발야구는 한 베이스씩 더가는 센스로 발휘하고, 박경완이 견제하는 동안에는 뛰는 시늉만 하는 전략으로 수정하면 분명 SK 배터리는 헷갈릴 겁니다. 볼넷은 부수효과로 얻으면 되구요. 그러다 방심하면 불시에 한번 뛰어주면 되죠.^^
반면 SK는 채상병을 상대로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더군요. 아니 거의 유린 수준이었습니다. 채상병의 단점은 송구동작이 완만하고 송구하는 팔의 각도가 짧아 강한 공을 던질 수 없다는겁니다. 그래서 시즌 중에도 겨우 2할대의 도루저지율을 보여줬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SK 주자는 채상병에게 땡큐를 연발했습니다. 그래서 팬들은 채상병 대신 최승환을 기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경험탓인지 어쨌든 김경문감독은 채상병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SK도 두산 못지 않은 발빠른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뽀너스 #1. 오늘의 MVP
내맘대로 뽑는 1차전 MVP로 누구를 뽑을까 살짝 고민했는데요. 결국 랜들을 선택했습니다. 3.2이닝을 잘 막아준 이재우도 물론 훌륭했지만요. 선발투수가 열세인 상황에서 랜들의 선발승은 두산에게 희망 메시지나 다름 없습니다. 특히 부친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타자를 막아낸 점, 김재현의 홈런 외에 실점을 하지 않은 점, 위기 속에서도 침착한 플레이로 극복해낸 점 등은 MVP로 선정되기에 손색이 없네요. 랜들사마의 4차전도 기대해 봅니다. 흠... KBO도 랜들을 MVP로 선정했군요. 간만에 KBO와 호흡을 맞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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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작년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리오스가 2:0 완봉승을 기록한 이후 김성근감독이 김광현을 올리는 꼼수를 선택했었죠. 당시 가능성있는 정도의 신인급 투수를 올림으로써 리오스와의 경기를 버리는 경기로 과감히 격하시켰는데요. 결국 이 꼼수 하나가 시리즈를 바꿔놨었죠. 오늘 패배로 혹시나 야신이 뭔가 다른 수를 생각해내지 않을까 일말의 불안감이 있습니다. 물론 그걸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금메달리스트 달감독이 있지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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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관전평을 쓰고 나서 보니 달감독이 번트작전을 타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시한거라고 하네요. 저는 스스로 선택한줄 알았는데요. 1, 4회 찬스를 못이은 것이 번트작전의 이유라고 하네요.어쨌든 두산의 선수가 '생각하는 야구'는 시즌 내내 이어져왔구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도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 마지막 경기에서 이종욱의 스퀴즈 번트가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