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없다면 여행은 그냥 관광에 지나지 않는다. 죽기전에 언제 다시 와보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철저히 해야 여행의 참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작 여행보다 여행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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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시베리아 1만㎞ 대장정 3. 우랄산맥을 넘어 러시아를 상징하는 문양은 두 개의 머리가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쌍두독수리다. 조선말에 우리가 수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 대립했다면 러시아에서는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를 내세운 양대 진영이 쌍두독수리처럼 서로 다른 식으로 러시아를 이끌고자 대립해 왔다. 슬라브주의는 러시아식으로 살아가자는 민족주의요, 서구주의는 러시아의 후진성을 벗고 개혁을 통해 서구문명을 더 빨리 받아들이자는 입장이다. 슬라브주의를 대표하는 도시가 모스크바요, 서구주의를 대표하는 도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짧은 여정에 무엇이 슬라브 식이고 무엇이 서구식인지 파악할 순 없지만 크렘린과 아르바트거리의 모스크바가 로마와 파리의 걸작 건축물을 모델로 계획한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러시아 냄새가 한결 더 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두 도시의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러시아 정교회조차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보다 서구화된 모습을 본다. 차를 타고 모스크바의 순환도로를 한 바퀴 돌다 보면 과연 과거 냉전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룬 나라의 수도다운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이 유명한 도시에 도착했군.” 나폴레옹의 말대로 우리도 레닌 언덕에 올라 모스크바강 건너 북동쪽으로 펼쳐진 웅장한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모스크바 구경을 시작했다. 붉은 광장과 크렘린을 돌다 보면 온갖 피부색의 지구인들을 볼 수 있다. 붉은 광장 북쪽 가운데의 국영백화점. 옛 소련의 해체와 그로 인한 혼란기에 실패한 사회주의 경제의 본보기가 되었던 곳이 이제는 명품과 쇼핑객이 넘쳐흐르는 쇼핑명소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는 관광객의 호기심용 액세서리로 전락했을 뿐이다.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마르크스로 분장한 이들이 곳곳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해주고는 돈을 받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박제된 건축물의 도시다. 자신의 원래 용도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관광객의 눈길만을 위해 존재하는 강요된 건축물의 집합소. 도스토예프스키나 푸슈킨 또는 고골리의 문학과 무소르그스키,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탄생한 곳이요, 레닌의 혁명무대며 2차대전의 최대 격전지 중의 한곳이라는 역사가 아니라면 이 박제된 건축물의 도시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고 보면 도시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이 도시에 존재의 이유를 부여한 것은 문화의 숨결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베네치아에 버금가는 운하의 도시다. 배를 띄워 골목처럼 나있는 물길을 따라 둘러보는 맛이 쏠쏠하다. 동물의 박제는 외형만 남기고 내장은 모두 긁어내지만 이 도시의 박제된 건물은 내부 인테리어가 호사의 극치다. 레닌의 공산혁명을 불러온 로마노프 왕조의 허영이 도시 전체에 스며있다. 이 인간의 탐욕이 싫어 레닌이 모스크바 천도를 결정한 것이 아닐까. 레닌이 혁명 후 바로 죽지 않고 계속 공산 혁명을 이끌었다 해도 이 도시가 레닌그라드로 불렸을까. 레닌 묘소관람 경찰관 맘대로 레닌의 시신은 방부처리되어 붉은 광장의 남쪽에 있는 크렘린 성벽 쪽에서 북쪽을 향해 대리석 묘소에 안장되어 있다. 모스크바에만 사흘을 머물면서 날마다 레닌 묘소를 찾는 삼고초려를 했지만 결국 레닌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레닌의 묘소는 한 번에 서른 명 정도씩 입장을 시키는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공개시간 안내판이 없다. 첫날 오후 3시쯤 붉은 광장을 찾았을 때 레닌의 묘소는 이미 닫혀있었고 붉은 광장은 인파로 넘치고 있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민박집을 나와 붉은 광장에 도착한 아들과 나는 이번엔 시간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첫날 둘러보지 못한 크렘린의 남쪽과 동쪽 성벽을 둘러보고 줄서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30여 분 기다려 우리 뒤에도 제법 긴 줄을 섰는데 제복을 입은 이가 와서는 러시아어로 방송을 하고 가니 우리 뒤의 줄이 3분의 2가 흩어진다. 또 30여 분을 기다려 이제 우리 차례가 다 되었는데 또 아까의 그 제복이 와서는 방송을 한다. 이번에는 앞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흩어져 버린다. 단지 몇몇만 “웬 떡이야” 하며 앞으로 줄을 줄인다. 모두 러시아말을 못 알아듣는 외국인들이다. 줄 맨 앞으로 갔더니 경찰과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경찰은 “문 닫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관광객은 “1시에 닫는다 하곤 왜 15분 일찍 문을 닫느냐?”고 따지는가 하면 “멀리서 왔다. 오늘 모스크바를 떠난다. 마지막이니 꼭 보게 해달라”고 애걸하기도 한다. “내일은 언제 여느냐”고 물으니 “11시에 연다”해서 다음날 세 번째로 갔는데 월요일인 이날은 아예 휴관하는 날이었다. 삼고초려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 ||
2006-10-19 전상우 junsw@state.go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