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45세 이후의 삶을 누군가는 벌써 살고 있었다.
너무 부러울 뿐이다. 그리고 각오를 다시 새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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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시베리아 1만㎞ 대장정 2. 울란바토르에서 시베리아까지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북경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걸린 시간과 비슷한 서른 한 시간의 여정이다. 베이징에서는 아침 출발이라 하룻밤을 열차서 보내지만 이르쿠츠크행 열차에는 저녁 일곱 시에 떠나기 때문에 이틀 밤을 차에서 지새워야 한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열차 두 량만 여기저기 잡초가 보이는 철길 위에 휑하니 서있다. 러시아와의 국경이다. 수흐바타르역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의 구절처럼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새벽잠을 자고 있다. 대합실에 들어서니 밤을 지새운 듯 퀭한 눈빛을 한 초로의 할아버지·할머니 서넛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몽골 출국과 러시아 입국을 위해 거의 일곱 시간을 두 국경 역에서 보내야한다. 객실에서 책을 들고 뒹굴기도 하고 역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눈이 마주친 관광객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침 우리와는 반대로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베이징으로 가는 독일인 부자를 만났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를 보여주고 싶어” 아들 녀석을 ‘모시고’ 이 피곤한 여행길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식이 뭔지” 하며 웃었다.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은 동서가 다를 바 없나 보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까지는 약 65km. 흐루시초프는 1960년 미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소련 방문을 맞아 이 멋진 호수를 보여주기로 작정하고 이 구간에 당시로서는 최고수준의 고속도로를 놓으라고 명령한다. 아이젠하워의 방문까지는 단 두 달. 명령이 명령인지라 공사를 끝내긴 했다. 하지만, 소련을 정찰하던 미국의 U2기 추락 사건으로 아이젠하워의 방문은 취소되고 이로 인해 이 고속도로는 오히려 유명해졌다. 침엽수와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숲 속을 왕복 2차선의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달려 관광객을 한 시간 만에 바이칼호에 내려놓는다. 춘원은 이곳을 와보기나 하고 ‘유정’의 한 무대로 삼았을까?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숫가를 산책하다 같은 열차를 탔던 독일 남녀 학생과 우리보다 먼저 이르쿠츠크의 호스텔을 떠난 이탈리아에서 온 사촌 형제를 다시 만났다. 여기서 배를 타고 알혼섬으로 간단다. 뱃시간을 알아 두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뇨, 그냥 가보고 없으면 내일 가죠 뭐”하며 천하태평이다. 우랄산맥 동쪽의 노보시비르스크는 오브강을 건너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철교를 놓기 위한 전초기지로 1893년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다. 지금은 러시아 3대 도시이자 교통중심지로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산업원자재를 우랄지역 서쪽으로 수송하기 위한 중간 집하장이 되었다.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사흘간 머물며 오페라와 발레의 향기에 젖어보려 했는데 여름에는 단원들이 단체로 휴가를 가는 하면기(夏眠期)란다. 노보의 2차대전 전승기념탑도 막 결혼한 신랑·신부의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도 전쟁기념관에서 결혼식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전승기념탑 기념촬영 문화를 서양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를 안내한 민박집 아가씨에게 물었더니 “나라를 지킨 이들을 위한 추모 공원이니 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이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평화도 없었을 것이고 결혼도 못했을 것 아닌가?” 하며 오히려 의아해 한다. 정말 세상은 넓고 민족마다 생각의 차이도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 - 친절한 심사관 오만한 경찰관 러시아의 출입국 심사는 여행 안내서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무뚝뚝한 관리들의 횡포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나훗스키역의 심사관은 우리의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는다. “러시아어?” 함께 탄 20대의 남녀 독일학생과 우리가 “니에트(‘No’란 뜻의 러시어말)”라고 대꾸하자 “잉글리시 오케이?” 하며 영어로 “한 시간 동안 여권 확인을 하겠다. 불편하겠지만 그동안 객실 안에만 있어주기 바란다. 화장실도 갈 수 없다. 여권을 다시 돌려받으면 마음대로 주위를 돌아다녀도 좋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 좋은 여행 바란다”며 여권을 가져간다. 웃는 얼굴의 친절한 입국심사관. 여기가 러시아 맞아? 밥맛 떨어지게 한다는 관리들의 악명은 사실이 아니었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빠스뽀뜨?”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한 열차가 오브강의 철교를 건너기도 전에 러시아 경찰과 막 부닥쳤다. 외국인들이라면 누구나 흔히 겪는 러시아 경찰의 통행세 징수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여권을 돌려주지 않으면 답답하기 때문에 일정 바쁜 관광객은 몇 푼 건네주게 마련이다. 같은 객실에 탄 미모의 러시아 처녀가 통역을 하면서 몇 푼 집어주라는 손짓을 했지만 한국대사관 직원이 입회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니 “좋다. 모스크바에서 보자”며 여권을 돌려준다. 결국, 별 문제가 없었지만 야로슬라브스키역으로 마중 나온 후배를 만나기 전까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 ||
2006-10-12 전상우 junsw@state.go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