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S의 귀국
S는 논문이 통과되자 귀국 준비를 서둘렀다.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귀국하자마자 출근해야 할 판이다. 세계 최고의 검색사이트인 G와 VoIP 사업자인 S가 한국에서 4G 무선 통신사업을 시작한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K통신사는 국내 통신업계의 맏형이자 자회사인 F를 통해 명실공히 유무선 터줏대감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G에서 무선망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 글로벌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기존에 구축한 플랫폼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이는 것이다.
S는 귀국 비행기에서 뉴스를 틀었다. 뉴스에서는 G가 4세대 무선망인 와이브로 버전 2를 무료로 개방하는 대신 VoIP의 통화료만 부과하겠다는 발표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것도 국내 이통사 통화료의 1/3 가격으로 말이다. 그동안 비싼 이통사 요금에 불만을 가져온 소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고 정통부도 4G는 기술적 배경이 무선과 다르므로 법제상 문제는 없다고 한발 빼고 있었다. 유선은 국가 기간망 산업으로 보호되지만 무선은 다르다는 해설도 곁들여졌다.
뉴스를 보면서 S는 중얼거렸다. ‘드디어 올게 오고 마는구나. 이렇게 되면 이통사도 무너지고, IPTV 사업도 힘들어지고, DMB도 물 건너가고 결국 유선도 잠식 당할텐데….’
사실 G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몇 년전 유사한 모델을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하지만 그건 국지적인 지역에 한정됐고 VoIP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러더니 올해 초 G가 S를 인수하고 VoIP를 전면에 내세우고부터 이 모델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 했다. D, S, C 등 미국의 통신사들은 극렬하게 반발했지만 소비자의 선택까지 막지는 못했다.
S의 논문주제는 바로 G의 무선통신사업 모델에 관한 것이었다. S는 G가 무선사업이 발달한 한국을 타깃으로 할 것을 예견하긴 했지만 이렇게 급속히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논문자료 수집차 만났던 검색사이트 G의 관계자는 해외진출에 대해 그리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었다. 어쨌든 S는 입맛을 다지며 인천공항을 나섰다.
4. J의 이직
J는 아직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귀국까지는 6개월 정도 남았다. 하지만 귀국할 생각이 별로 없다. 가족들도 미국생활에 만족하지만 K방송사로 복귀해봐야 별로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J는 한때 잘나가는 예능 PD였지만 이젠 걸리적 거리는 선배에 불과하다. 아마 명퇴 압력만 받을게 뻔하다. 이미 시카고 한인 방송사의 전직 제의는 받아 두었다.
8년 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IPTV 서비스는 이제 중흥기를 맞았다. IPTV는 그저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전송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시청자가 직접 만드는 미디어 센터로 환골탈태했다. 과거 DMB는 시청자의 제작 참여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어 활성화가 불가능했다. 그저 이동 중에나 보는 단말이라는 인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IPTV는 그 한계를 극복했다. 처음에는 UCC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동영상이 IPTV의 주요 컨텐츠로 뜨더니 UCC 제작자들이 모여 기업화를 이루고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이 커지자 아마추어 카메라맨에서 전직 방송사 PD 등 우수인력까지 IPTV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시청률 상위 10위 프로그램 중 4개가 비지상파 프로그램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이제 뉴스를 제외하곤 지상파가 우위에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J의 이직결심을 굳히게 한건 2006년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삐딱씨의 무한발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J와 절친한 회사 동기 R이 만든 첫 번째 정치 풍자 코미디다. 물론 IPTV UCC 채널에서 방영된다. 얼마나 호응이 높은지 주1회 1시간 편성이 주2회 편성으로, 그리고 지금은 주4회 편성으로 확대되었다.
사실 R은 방송사에서 소문난 괴짜였다. R의 아이디어는 독특하지만 방송사는 그의 천재성을 수용하기엔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이런 R의 재능은 IPTV에 적합했고 그는 첫 작품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삐딱씨의 무한발언>은 교포가 많은 시카고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J는 시카고 한인방송에 이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던 인연으로 이직 제의를 받은 것이다.
※ 이 글은 우모가 <방송환경의 변화와 미래>의 기말 레포트로 작성한 <미디어 오딧세이, 2017> 입니다.